이번에는 금융감독원이 나섰다. 이메일의 안전한 사용을 통해 내부 정보의 보안을 확보하자는 명분 아래 ‘이메일관련 업무처리규정’을 제정하라고 지시했다.
이른바 이메일 사용자의 비밀유지 위반, 은행 방침 위반 등 불법적 행위를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가려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직원들이 송·수신한 모든 이메일과 자료를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메일 이용자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 놨지만 사생활 침해 논란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전동의만으로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여러 가지 판례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일부 은행들도 금감원의 지시사항이라 규칙을 만들긴 해야겠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금감원은 당장 올해 정기감사에서 이부분을 짚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정용화 검사총괄국장은 “규정에 대해 은행 담당자는 물론 증권산업노조와도 얘기 했다”며 “올해 종합감사인 만큼 지침에 대해서는 이행여부를 점검하겠다”고 단언했다.
◇ 은행권, 금감원 ‘모범안’ 따라 규정 성안=정국장은 “공문을 통해 제시한 지침은 가이드라인”이라며 “은행권이 자율적으로 제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국장의 말과는 달리 대부분 은행은 금감원의 ‘모범안’을 준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금감원의 지침이 거의 적용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감원의 모범안은 현실적인 적용이 어려운데다 법적인 하자도 가지고 있다.
우선 업무처리 범위의 경우 이메일을 개인용과 업무용으로 나누고 업무용은 부서별로 개인용은 직원별로 부여토록 했지만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게 은행권의 주장이다.
A은행의 경우 개인별, 업무별 구분이 어렵고 이중 비용으로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들어 통합관리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만들고 있다. 대신 모니터링과 관련해서는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직원들의 동의서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금감원이 개인용과 업무용 구분을 근거로 이메일을 통한 송·수신 업무자료를 보존할 것을 권장한 부분과도 배치된다.
특히 내부통제 시스템은 더욱 문제다. 금감원은 내부통제시스템 구축의 방법으로 모니터링을 하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실시할 것을 명시했다.
즉, 이메일 부여 때 회사가 필요한 경우 이용자의 동의를 받아 송·수신내용을 모니터링하고 임직원의 사전 동의가 없을 경우 내용을 이메일 부여시 고지해 불법 여지를 없애자는 것이다.
하지만 B은행 관계자의 고민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그는 “이메일을 부여하면서 전체 직원의 서약서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한명이라도 이의제기해서 서약을 받지 못하면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금감원에서 법적인 문제를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지침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꼬집었다.
◇ “명백한 불법”=실제로 이 실무자의 지적은 정확하다. 법적 분란은 분명히 발생하는데 금감원이 책임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메일을 열어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법원 판례가 그렇다.
지난 2002년 10월에 전화통화자 감청을 놓고 벌인 소송에서 감청인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전기통신’의 정의는 유선·무선·광선 및 기타의 전자적 방식에 의한 송·수신이다. 이사건의 경우 감청을 했던 C가 통화했던 두 사람 가운데 한명인 A로부터 동의서를 받았지만 B로부터는 동의서를 받지 않아 소송에 휘말렸다.
즉, 은행에서 어떤 수단을 사용하든 이메일 이용자의 동의를 얻었어도 메일을 주고 받는 상대방의 문제제기가 있을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셈이다.
진보넷 정여경 정책실장은 “동의서를 받는 절차 자체가 부당한 압력으로 간주 될 소지가 있다”며 “이를 차치하고라도 메일을 주고받는 상대자의 허락을 얻지 않으면 불법이 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금감원이 감사를 통해 은행을 압박한다면 ‘불법적 감청 강요’에 해당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산업노조는 이와 관련 각 은행별 사례 수집을 하고 문제가 있다면 적극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계희 기자 gh01@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