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이 아니잖아요.”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재원 마련에 각종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는걸 두고 한 금융업계 관계자의 반응이다. 중앙은행 발권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특정 섹터를 지원하는 것인데 화수분도 아닌 걸 어떻게 그렇게 쉽게 돈을 풀라고 하는지 놀랍다는 얘기도 했다.
결국 돈 얘기가 중요한 건 맞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순서부터 어긋났다. 정부의 재정정책이든, 중앙은행의 통화증발이든 국민들이 부담을 나눠가져야 해서다. 무엇보다 산업재편이라는 큰 틀에서 그림을 그린 뒤 기업을 살릴 것인지 가늠하는 절차는 온데간데없이, 누가 재원마련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만 지나치게 부각되는 모습이다.
일본의 히타치와 도시바, 파나소닉 등의 사업재편 성공 배경을 살펴볼 만하다. 산업연구원은 이와 관련 흑자를 내더라도, 회사의 상징같은 제품이더라도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결단력이 주요했다고 분석했다. 경영진과 이사회가 시장의 평가를 받아들여 기업체질을 개선하고 신성장 부문 발굴에 주력한 점도 꼽았다. 단순 재무적 구조조정에 그칠 게 아니라 구조개혁과 맞닿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구조조정이 될 것이다.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따져 보는 것도 과연 비용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대표적이다. 2조원 대 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정정공시한 것은 기업윤리 차원에서 접근할 만한 중요한 사안이다. 2013~2014년에 수 천 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고 공시했다가 누락됐던 비용과 손실 충당금을 반영하니 사실은 흑자가 아니라 적자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용납하기 어렵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최근 발표한 ‘올바른 기업구조조정 5대 원칙과 방안’에 따르면,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은 경영실패의 책임과 비용을 지배주주, 주주, 채권자 순으로 부담하는 원칙을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영자는 경영실패 책임을 져야하고, 채권자인 국책은행 역시 대손충당을 위한 자구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돈 얘기로 돌아오면, 여전히 화수분은 없다. 특히 조선·해운업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공급과잉 업종 구조개혁이 요구되는 현 시점에서, 구조조정이란 단순 재무구조 개선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재원을 활용하는 데 더욱 명분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업의 진입과 효율적 기업의 대체 등이 이뤄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에 물동이 안 물을 퍼내야 하지 않을까.
정선은 기자 bravebamb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