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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근 한국증권금융 부사장] 더하기 1초의 여유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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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4-23 00:00

‘빨리빨리’기업 경영의 덕목 아냐
생각이 바뀌면 세상 크게 달라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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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양현근 한국증권금융 부사장(시인)

▲사진: 양현근 한국증권금융 부사장(시인)

[양현근 한국증권금융 부사장(시인)]

지난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한국 또는 한국인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 것 같은가 하는 질문에 외국인들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부지런하다.

월드컵, 88올림픽 등을, 부정적 이미지로는 빨리빨리. 분단국가, 한국전쟁 등을 꼽았다. 빨리빨리 문화가 부정적인 이미지 1위로 나타난 것이다.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자판기 컵 나오는 곳에 손을 넣고 기다린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닫힘’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거나, 영화관에서 스크롤이 올라가기도 전에 일어나는 행동도 마찬가지다.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가까운 식당에 가보라. 틀림없이 주문과 동시에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교통신호가 바뀌고 조금만 꾸물거리면 1초 3타의 클락션 소리가 어김없이 날라온다. 끼어들기는 일상화되어 있고,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바퀴벌레처럼 슬금슬금 움직이는 차량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교통사고 사망률 세계 1위의 불명예를 안게 된데는 나름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반면에, 일본이나 영국 등에서 자동차 클락션 소리를 듣기란 결코 쉽지 않다. 상대방에 대한 양보와 배려가 몸에 밴 탓이다.

이와 같은 조급성이 하나의 문화처럼, 그리고 전반적인 사회현상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유독 우리나라 국민들만 성질 급하고 참을성이 부족하여 생긴 현상은 아닐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양반문화로 인해 게으르고 행동이 느린 민족으로 조선을 다녀간 서양인들이 묘사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한국인은 유목민의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농경생활, 그리고 잦은 외세의 침략 등으로 인해 항상 떠날 준비를 해야 했고 이것이 성향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6.25전쟁을 겪으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빨리 움직여야 했고, 7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과정에서 남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일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나라가 분단되면서 좁은 국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빨리빨리를 외칠 수 밖에 없었고, 여기에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 문화도 일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의학적으로 조급증이란 어떠한 일을 앞두고 마음이 불안해지거나 일의 진행과정에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쓸데없이 서두르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나 세상 모든 질서에는 과정과 시간이라는 필수요소가 있다. 충분한 햇볕과 수분, 그리고 영양분만 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벼가 익을 수는 없다. 빨리빨리를 외친다고 해서 풍작을 거두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적당한 자양분과 수분을 공급하면 나머지는 시간의 몫이다.

모든 사회현상과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기질적인 조급성이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빨리빨리 기질은 우리나라의 정보화를 앞당긴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느리고 답답한 것을 못참는 기질이 아이러니하게도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인터넷속도가 빠르고 IT인프라 기능이 잘 갖춰진 정보 최강국에서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고 사는 셈이다.

또한 과거 경제성장기에 초고속 압축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함께 빨리빨리와 같은 신속한 의사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다른 나라와 경쟁하기 위해서 정확성보다는 신속성, 그리고 법과 원칙보다는 편의성이 더 중요한 가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혼이 담긴 제품보다는 밤을 새워서라도 시간을 앞당기고 납기일을 단축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 되고 빨리빨리 하는 것이 최고로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나라도 어엿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더 이상‘대충대충’이나 ‘빨리빨리’가 사회적 미덕이 되고 기업 경영의 덕목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일본은 20여명이나 되는 기초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우리나라에는 단 한 명도 없는 현실이 이와 같은 빨리빨리 문화 때문이라는 일본 언론의 지적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파트를 지은 지 20 여년만 넘기면 재건축조합이 결성되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세상에서 또 있을까.

지금과 같이 물리적인 속도를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유럽의 성당처럼 수백 년에 걸쳐 탄생하는 건축 명작은 우리나라에서 요원한 일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기업경영이나 경제활동에서 신속성과 효율성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명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것에 우선하는 최고의 가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과보다는 과정 중심의 가치관, 정책의 일관성, 모든 일에 혼을 불어넣는 문화 등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미학이 아닌가 싶다.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이다.

경영자가 자기 재임기간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이 단기업적주의를 조장하고, 조급주의를 양산한다. 1초를 못참아 클락션을 눌러대기 전에 봄꽃이 툭툭 터지고, 눈 내리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그리고 지금 서있는 자리에 딱 1초만 더해보라.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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