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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연봉 프레임에 갇힌 금융권

김의석 기자

eskim@

기사입력 : 2016-07-21 15:28 최종수정 : 2016-07-21 22:40

금융부장 겸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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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연봉 프레임에 갇힌 금융권
[한국금융신문 김의석 기자]“토끼는 생각하지마라”

어떤 사람에게 토끼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면 토끼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토끼를 떠올리게 된다. 머릿속에 귀가 길고 꼬리는 짧으며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토끼에 대한 정보가 빙빙 돌다. 미국의 인지언어과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말한 자신의 ‘프레임 이론’이다.

프레임(frame)은 '세상을 보는 틀'을 의미한다. 프레임 이론은 전략적으로 짜인 틀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 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며, 이를 반박하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상대의 프레임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무엇이 상식으로 간주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어떤 프레임들이 사람들의 뇌 속에 있는가와, 그러한 프레임이 얼마나 자주 환기되고 사용되느냐에 따라 상식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주요 시중은행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이 8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은행 직원 1명이 벌어들인 순이익은 5600만원선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성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가져간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이를 바라보는 대다수 서민들도 적잖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정부와 시중은행 경영진들이 파업을 불사하는 노동계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상반기 금융공기업에 이어 민간 영역의 시중은행까지 성과연봉제를 강행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은행연합회가 21일 신한은행, 우리은행, KB국민은행 등 민간은행에 적용할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KDB산업은행, 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등 금융공기업들은 지난 5월까지 비슷한 연봉제 도입을 마쳤다. 이로써 성과연봉제는 형식상 전 은행권에서 실시될 기반을 갖췄다. 은행연합회 가이드라인은 같은 직급이라도 성과에 따라 연봉이 최대 40% 차이가 나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호봉제는 폐지된다.

은행권 성과연봉제는 임종룡닫기임종룡기사 모아보기 금융위원장의 작품이다. 그는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1일 한 은행을 방문한 자리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은 은행권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으나 사실과 다르다. 은행장들은 금융당국의 압력 속에 마지못해 '개혁'에 동참했다. 금융노조는 펄펄 뛰며 오는 9월 총파업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들은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성과연봉제의 평가체계가 은행원 간 판매 경쟁이 붙어 대출의 질이 떨어지고, 불완전 판매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금융노조 측 관계자는 사측이 개별 성과연봉제와 함께 저성과자 해고제도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성과연봉제가 단순히 임금체계 변경의 문제가 아니라 '쉬운 해고'를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라는 점도 보다 명확해졌다면서 성과연봉제를 반드시 저지할 방침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는 정부나 이에 강력 반발하는 노조나 칭찬을 받긴 글렀다. 정부가 금융공기업을 상대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제한 것은 그나마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14개 민간은행까지 금융위원회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관치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가이드라인은 은행연합회가 발표했지만 그 뒤에 금융당국이 있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 정부가 개혁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소통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그렇다고 은행 노조가 잘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소득층인 은행원들이 여태껏 호봉제를 고수하고 있다는 게 당최 말이 안 된다. 근속연수에 따라 저절로 월급이 올라가는 호봉제는 무임승차 논란을 초래한다.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의 의욕을 꺾는 부작용도 있다.

호봉제에 집착할수록 기득권자의 욕심으로 비칠 뿐이다. 저금리 장기화, 인터넷은행 등 핀테크 확산은 은행의 위상을 위협하고 있다. 귀족노조 손가락질을 피하려면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 최근 3년 간 임금체계를 바꾼 기업은 73%에 달했고, 셋중에 하나는 호봉제, 연공 서열제를 고쳤을 만큼 산업 현장의 흐름이기도 하다. 한국무역진흥공사에선 성과관리를 강화한 이후 유능한 직원들이 선진국 무역관보다 아프리카 등 여건이 열악한 오지를 선호한다. 사업수요가 많고 성과를 창출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제도가 문화를 바꾼 셈이다.

정착만 되면 청년 고용 기회가 커지며,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도 줄어들 수 있다. 정년 문제도 해결된다.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다. 문제는 공감대 형성이다. 노동계도 도입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부작용 최소화에 노력해야 한다. 사용자 측은 합리적인 대안으로 노조를 설득해야겠지만 노동계도 이익만 지키고 안주하겠다는 기득권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산성 중심의 성장과 조기 퇴직 방지를 위해서도 성과연봉제는 꼭 성공해야 한다.

금융노조는 불황의 덫에 걸려 취업의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청년들의 얼굴을 다시 떠올려 봐야 할 때다. 자신의 배만 부르면 된다는 식의 시대착오적 파업 결의는 명분과 실리 모든 면에서 성숙한 프레임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된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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