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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최강 도약 기반 녹스는 소리

정희윤 기자

simmoo@

기사입력 : 2015-02-11 22:03 최종수정 : 2015-02-1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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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최강 도약 기반 녹스는 소리
대장부 큰 뜻과 굳센 마음을 논할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사자성어가 있다면 아마도 ‘절치부심’과 ‘와신상담‘이 꼽힐 만하지 않을까. 두 사자성어를 떠올리니 곧바로 세 가지 공통점이 생각난다. 춘추전국시대 숱하게 벌어졌던 전쟁의 와중에 평생소원이 그만 ‘복수’가 되어야 했던 사나이들이 그 유래의 주인공이었다는 점이 하나요, 둘 다 사마천이 쓴 불후의 역사서 <사기>에 등장하는 서사라는 것이 또 하나요, 집요하고 처절한 비장미가 서려 있어 뭇 대중들의 공감을 끌기 알맞다는 점이 나머지다.

그리고 차이점 또한 뚜렷하다.

같은 경우를 두고 나란히 인용되거나 술회되는 것이면서도 이를 갈며 심장이 썩도록 진시황에게 복수를 바라마지 않았던 번어기의 뜻은 실패로 돌아간 반면 월나라왕 구천은 마침내 최후의 승리자로 성공한 점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번어기는 자객을 지원한 형가라는 사나이가 진시황에게 근접할 수 있도록 제 목을 바치는 지극히 어려운 결행을 했지만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사마천은 자객열전에서 형가와 함께 거사에 나섰던 나이어린 소년 장사의 미숙함에다 막판에 운 마저 따르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는 과정을 절절하게 묘사해 적지 않은 독자들을 울렸다. 반면 구천은 복수를 이루기 위해 잠시의 나태함도 용납하지 않고 경계한 끝에 큰 뜻을 이룬다.

◇ 번어기와 구천, 출발부터 다름

다른 점은 또 있다. 사마천은 최후의 승리자 구천의 이야기를 담은 ‘월왕구천세가’에서 ‘와신상담’ 고사성어를 등장시켰다. 회계산 전투에서 큰 패배를 당하자 오나라 부차에게 신하되기를 자처하면서 왕비를 첩으로 보냄으로써 목숨을 부지한 그가 돌아와서는 자리 옆에다 쓸개를 매달아 놓은 뒤 앉으나 누우나 쳐다보고 음식 먹을 때도 핥아 가면서, 잘 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섶(장작더미) 위에 몸을 눕히며 의지를 새롭게 불태웠다고 사기에는 나온다.

그런데 다른 사서에는 와신상담 일화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마천이 벼슬 살았던 한나라가 건국되던 초기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 <오월춘추>에서 전하는 구천의 복수담에는 고신로심(苦身勞心, 몸과 마음을 다해 뜻을 행함) 한 가지로 밤 낮 없이 최종 역전을 꾀했으며 와신상담이 아니라 ‘포빙악화’의 고생을 스스로 택했다고 나온다고 한다.

겨울에는 늘 얼음을 껴 안는 포빙(抱氷)으로, 여름에는 도리어 불을 곁에 두는 악화(握火)의 고초를 이었다. 졸음이 오면 매운 맛 나는 여뀌를 씹으며 잠을 줄여 가며 부차가 나태해지기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한 때 복수의 금융사가 새로운 전략을 내세우면서 인용했던 ‘도광양회(韜光養晦)’ 사자성어 또한 구천의 포석과 행보를 일컫는데 쓰기도 한다.

◇ 존재기반과 스타일이 달라서 ‘흑과 백’

도광, 빛 을 숨긴다는 글자 뜻에 주목해서 학식이나 재능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 단계를 지칭한다는 풀이가 많지만 ‘칼날의 빛을 숨긴다’는 적극적이고 실전적 풀이가 더욱 와 닿는다. 구천은 마음 속에서 칼을 끊임 없이 갈았고 나중에 거병하기 위한 채비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으며 자신이 뜻한 바를 요새 말로 자기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했다는 점이 인정받는 사례다.

하지만 포빙악화이건 와신상담이건 어느 쪽이 더 적절한지 따져서 무엇하랴. 진정 중요한 사실은 한 점 소홀함 없애려 스스로를 채찍질한 구천의 노력에다가 스스로 자멸의 길을 찾아들어간 부차의 몰락이 맞물린 결과라는 사실이다.

부차는 구천을 크게 한 번 꺾은 뒤로는 자만과 나태에 빠져서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것도 모자라 구천이 술책으로 부린 미인계에 적극 말려들 정도로 개인적 욕망에만 충실히 했다. 몰락한 황제나 제후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충신의 간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가 오랫동안 역량을 비축한 구천의 기습에 모든 터전을 잃고 말았다.

청나라 말 이종오라는 사람이 남긴 책에서 유래했다는 ‘후흑학’에서는 구천의 전략을 높이 산다. 얼굴 낯짝을 두껍게 한다는 뜻에서 두터울 후(厚), 궁극으로 추구하는 바와 의도를 숨기고 가리거나 혼란을 주는 흑도(黑道)의 길을 마다 않는다는 뜻에서 검을 흑. 그런 책략을 숭상하고 동의하는 비법과 각오가 담겼다는 후흑의 노선 대척점에 세운 것은 ‘박백(薄白)’이다.

◇ 반칙과 강압을 마다 않는 목적 추구

얄팍하니 투명해서 밝고 빛이 나 보이긴 하지만 현실세계는 그렇게만 작동하지 않는다고 조롱하는 관점에서 박백의 길은 무용지물인 때가 많다고 공격한다. 백성들의 생활적 곤궁을 해결해 주면서 적정한 세금을 매기고 농번기에 징병하는 일을 피하는 인의로운 왕도정치가 아무리 바람직하다 한들 현실을 냉철히 봐가면서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다.

춘추전국시대처럼 이웃나라에서 언제 군세를 동원할지 모르는데 과세를 낮추고 농한기에만 징집해서 훈련하는 느슨한 대응태세가 가능하냐는 반론, 군량미를 비롯한 군수물자와 병사 확보는 기본적인 생존전략이라는 점에서 사실 춘추전국시대엔 ‘공맹’의 길은 이론적으로만 존중받았던 것 아니겠는가.

또한 청나라 말기 후흑학이 대두한 것은 중국 역대 왕조 지배이데올로기들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모색이 빚어 낸 열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 식민지 개척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던 영국군이 ‘감히’ 아편을 동원해 백성들의 건강과 나라 경제의 근간을 해친다며 분연히 전쟁에 나서보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던 과정을 통찰해 본 근현대 중국 지성의 한 분파가 얻은 결론은 의미심장하다.

제국주의 영국군의 후흑노선에 청나라식 정도가 통하리라 믿은 나머지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던 박백한 조정의 무능함을 극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 수반이 ‘흑묘백묘론’을 내세우는 실용주의적 관점과 노선을 겸비한 지 오래라는 점을 생각하면 새삼스럽지 않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접목시킨다면 반드시 당과 공안의 손길이 닿지 않는 치외법권의 ‘흑사회’가 생기리라는 사실을 공산당 지도부가 몰랐다고는 상상할 수 없고 그런 폐단은 얼마든지 막아 낼 자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 구국, 외세와의 경쟁엔 주목해야겠지만

‘대국굴기’ 야심을 슬쩍 슬쩍 드러내기도 하지만 G2체제로 글로벌 판도가 바뀌었다고 추켜세워도 요지부동 기본 노선은 도광양회의 길을 걷고 있는 것 아닌가 살펴보게 된다. 박백노선에선 인의에 기반한 정사로 주변나라들이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정통노선을 펴야 한다고 기개를 꺾지 않고 있는데다 후흑학에서 기반하자면 아직 힘은 부족하다는 자각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풀이도 흥미롭다.

그렇다고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주변국들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돌돌핍인’ 노선으로 전환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고 다른 나라 전문가들은 경계하고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을 규정하는 국제법에는 힘이 최고 율법이라는 격언이 있으니 후흑의 길을 걷건 박백의 길을 걷건 제 나라 생존과 번영을 꾀하는데 가장 적정한 노선을 취하는 것에만 주목하자는 노선에 공감한다.

하지만 내부의 문제에선 어떨까?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일반적 역사서와 비슷한 ‘본기’ 대신에 ‘세가’편과 ‘열전’을 훨씬 많이 남긴 까닭은 역사적 교훈을 많이 깨달으라는 배려였으리라.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대표하는 금융그룹 가운데 한 곳이 ‘돌돌핍인’ 강경노선을 굽히지 않고 있어 추이가 주목된다.

부국강병의 길은 하나 밖에 없으니 어서 한 쪽 규정과 프로세스로 통일을 해서 달려나가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위기론에 기반한 경영진의 강한 압박이 벌써 3개 분기로 접어들었다. 외국의 저명한 한 리서치 전문기관은 이 그룹의 장점 가운데 하나로 우리나라 GDP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수도권 영업네트워크가 2위에 올라 있다는 점을 추켜세웠다. 이것 말고도 최강으로 도약할 기반은 여럿 있다고 자타가 공인해 왔다. 하지만 ‘SWOT’경쟁전략 관점에서 체계적이고 충분하게 강점을 극대화하며 약점을 최소화하려는 노력같은 것은 아예 뒷전으로 밀어 놓은 채 당위적인 과제로서 결합과 통합만 강조되는 매우 특이한 과정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사마천이 되살아온다면 이 ‘김씨 세가’에 대해 어떤 논평으로 값을 매겨 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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