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질고 곡진한 사연 응결하였기에
옅푸른 대기를 얇게 저미며 쉼 없이 뛰어드는가
어귀에 닿을때부터 계곡은 겹겹 자욱함으로 막아서며
끈질기게 물어 왔지. 난만한 길 골라 다니던 약골들이여
어찌 온 겐가. 차라리 눈 질끈 감아 버린 채
칠흑 높다란 허공에 목숨 놓아버리느니 나을 것인데.
밤이면 별 밭에 물구나무 멱 감으며 지내는,
절벽 사이로 혹은 거친 봉우리 틈틈이 곧추 선
사시사철 날카로운 잎잎 소나무들 억센 기개 아니라면
밭은 숨 헐떡헐떡 후들후들 그 다리로는 나설 길 아니나니
‘황학도 여기는 지나지 못하고
잔나비도 오르려면 애를 먹는 곳’이라던 촉도난(蜀道難)
예삿일로 그 못지않은 길 나설 바 없어라
상고적 꿈 이야기 여쭈러 왔나이다
교교한 그믐 밤 북두성에 준하고 남두성에 거할 줄 알고
우뚝우뚝 높은 산맥 즐비한 풍상의 성채들 밖 먼 세상까지
용맹정진 들고 남이 융성한 힘 넘치었던
큰 나라 만민이 복을 누렸던 연간의 사연을 구하나이다
마음을 다해 가만히 살피거라
멀고 먼 대양이 협해를 열어 끝없이 끝없이
물 줄기 끌어 가는데도 다함이 없고 도리어
좀체 그바닥 알 길 없는 도도한 응수가 이어지는 광경을.
두물머리 결연한 합일 이후 미끄러지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온 몸 던져 달음질치는 검룡의 후예들을
억 만 겁 과거의 힘 뽑아내어 수 백 만 년도 더된 옛적에
첩첩 준령 깊디 깊은 곳 좌정한 태백 오대 동악들의
큰 맥박이 뛰던 지저에서 솟아나 콸콸
물보라 한 톨의 주저함 없이 쉼 없이 면면히 내달리는 발굽들을
다만 묵묵히 뭇 지세, 산야가 넉넉히
품어 안은 세월이었느니
육백년 전 북방 꾀하던 길 되돌려 일으켰던 큰 꿈
한 때 꺾였던 도읍
백두대간 구비마다 금수들 피울음 점점이 맺혔던 자리
해마다 꽃으로 번갈아 피는 사연일랑
이제 그만 옷 지어 입었나이다 때 마침 사람의 하늘이 밝았던
갑오년 기운이 트인 우리 산하의 원대한 뜻 본받아
먼 먼 대양에 걸쳐 아스라히 늘어 서 있는 수국(水國)들까지
올라도 올라도 낮아지지 않는 하늘길 너머 거치른 광야의 나라
그 너머로 떠나는 장도를 기원 하나이다
초원 수 만 리 따라 겹겹 에워싸이는 대장정은
단군 이전 신화로 숨 쉬었고
그 너른 품 잴 길 없어 먹빛만 짙어가는 출렁임을 즐겨 넘던
역사적 풍모를 이어 받았으며
능히 처녀 심청 인당수 뛰어든 헌신을 익혔으므로
티 없이 서로가 풍백이고 우사이며 운사가 되어
가는 곳마다 물맛과 토질의 다채로움 기꺼운 벗 삼고
궂은일 좋은일, 끝내는 금과 쟁을 타며
모두가 어울리는 잔치를 열리다.
어버이 섬김으로 내던진 마음 새물결 큰 연꽃으로 떠올라
광명 풍요를 나누자던 것은 하늘이 주신 향그러운 초심이니.
동녘 높이 푸르름따라 깃털 같은 억만근 고요 속에 우리는 본다
햇발이 이윽고 차오른 순간, 번지듯 터져나듯 쏟아진 새 아침을
광채 비산하는 갈기 일렁이며 하늘이듯 바다이듯
동기감응된 벽라의 색채 휘감고
온 산하에 내려 앉는 선사의 은혜 공생의 말씀들을.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